- (1) 사회를 바꾸는 사람들, 그들의 행복찾기
- 2012.08.22
사회를 바꾸는 사람들, 그들의 행복찾기
_구도 게이 <청년 사회적 창업하기> 출간기념 Talk Show
일시: 7월 2일 / 장소: 영등포 하자센터 999클럽 / 주관: 유자살롱 / 후원: 함께일하는재단, 에이지21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 서른 명이 넘었다. 모두가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었다. 어눌하거나, 방안에 갇혀 지내는 조금은 이상한 누나, 형들이었다. 나의 부모는 갈 곳 없는 그들을 거뒀다. 집안의 ‘문젯거리’를 맡아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가족은 점점 더 늘어났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가난과 비난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다. 동네 꼬마들이 ‘가난뱅이!’라고 외치며 던진 돌에 창문이 와장창 깨지기도 했다.
깨진 창문을 치우며 ‘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가난해야 하는 거지? 난 부모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난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부적응 청년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됐다.
‘소다테아게넷’
내가 만든 NPO법인의 이름은 ‘길러준다’는 뜻이다. 솔직하기 그지없는 이 이름 안에는 내 부모의 큰마음이 담겨 있다.
여러분은,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부모의 길을 자발적으로 걷고 있는 이유는 뭐라 생각하는가? 최근 내가 쓴 <청년 사회적 창업하기>가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함께일하는재단 브리지플러스 총서 1권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NPO는 어떤 조직이며, NPO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디에서 이익을 얻으며, 급여 수준은 어떤지 말하고자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청년들에게 삶을 가늠할 수 있게 돕고 싶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이 말을 전하고 싶다.
– 구도 게이의 가상 편지

자기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 서른 명이었어요. 진짜 가족은 네 명이었지요. 살 곳이 없거나 곤란한 일이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데려와 살았어요. 대부분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이거나 소년원에서 나왔거나 장애가 있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아이들이었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무얼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못해서 슬펐어요. 지금 일본사회는 많이 변해서, 부모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구나 하는 의식이 많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곤란했거든요.
어른이 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지만 부모님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중퇴하고 미국 유학을 갔고, 비즈니스 관련 공부를 했지요. 사실 대학교를 그만둘 때 정말 많이 망설였어요. 힘들게 대학 등록금을 내주는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하지만 친구도 부모도 대학 중퇴를 말렸지만 그 말리는 이유 중에 나를 설득할 만한 것은 없었어요. 결국 미국에서도 중퇴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창업하게 됐어요. 미국에서의 생활은 좋은 경험이었어요. 외국에서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됐거든요. 여러분은 외국에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시나요? 어떤 외국인이 일본은 사회적 과제가 매우 많은 선진국이라고 말하더군요. 빠른 속도의 고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단카이 세대 등등. 그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죠.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일본의 문제가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금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나라든 사회문제는 셀 수 없이 많아요. 만약에 우리가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일본의 사회문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어요. 아마 여러분도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가 많을 거예요. 제가 찾은 과제는 와카모노(젊은이 혹은 청년)였지요.
21살에 와카모노를 선택한 이유
미국 대학생 시절 방학 때 영국과 독일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소셜인베스트먼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인베스트먼트란 내 지갑에 돈이 나가서 시장에서 잘 되면 큰돈을 벌고 아니면 잃는 것을 뜻하잖아요? 근데 그 말이 소셜이란 말과 결합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일종의 쇼크였지요. 독일에서 소셜인베스트먼트란 말을 해준 분이 설명하기를 ‘청년이 가지고 있는 열정, 시간, 인생을 사회문제 해결에 투자하면 사회가 더 좋아지게 된다. 이것이 소셜인베스트먼트’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부모가 없거나, 가난하거나, 학대당한 기억이 있는 청년들을 서포터했던 제 어린시절 환경과 다른 의미가 아니구나!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와카모노를 선택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변용가능성(변화가능성)’이었어요.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해결만 된다면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잖아요? 그 문제에 뛰어드는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하지 않아서 과연 성공할까 불안한 게 아니라, 누구도 하지 않으니깐 가장 하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시작한 걸 따라 하는 건 지루하니까요.
삶의 그래프를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까지는 사회가 세금을 내고 교육을 시켜주는 시기에요.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시기는 누군가 세금을 내서 도서관이 생기고 다닐 학교가 생기는 즉, 누군가의 서포터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시기지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서포터 받던 시기에서 벗어나지요. 납세자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부모가 안 계시거나, 학대를 당했거나, 장애를 가진 여러 어려운 청년들은 납세자가 되는 게 아니라 수급자가 돼요. 결국 청년시절을 잘 서포터하지 않으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납세자 아니라 수급자를 더 많이 발생시키는 꼴이 돼버리는 거예요. 만약 그런 사람을 무시하거나 그건 네 책임이라고 꾸짖는 게 아니라 자립할 수 있게 지원한다면 사회를 지탱하는 납세자가 될 수 있어요.
게다가 그 시기가 가장 길어서 변용(변화)가능성 또한 커요. 리스크가 큰 만큼 변화가능성이 크고, 일본 사회의 변화 폭도 크겠지요?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젊은이가 불쌍하니깐 합시다. 그런 기회가 없었으니 지원합시다’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오히려 젊은이를 지원하면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깁니다’라거나 ‘그런 청년들을 방치하면 결국 여러분이 힘들어질 거예요’라고 말해요. 생계형 범죄자를 만들거나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이 적어져서 납세자 부담이 커지게 되는 걸 어필하는 거죠. 미래의 마이너스 리스크가 높은 것을 플러스 리스크로 변용하므로 일본이 더 좋게 변한다고 생각해요.
취업이 아닌 창업을 선택하다
물론 저에게도 선택의 기로가 있었어요. 리스크가 높은 창업보다는 청년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에 취직하는 방법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창업을 선택했어요. 아마도 제 어린 시절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거예요. 당시 기억들이 지금 이 일을 하는 데 많은 지혜를 줬어요. 생각해보세요. 만약 혼자서 청년들을 지원한다면 1년에 100명이 한계예요. 하지만 100명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 100명을 고용한다면, 10,000명을 지원할 수 있어요.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회사보다는 창업이 더 낫겠죠?
사회적기업은 서른이 정년이라는 말이 있어요. 결혼한다든지 아이를 기른다든지 한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게 일본의 상황이에요. 자원봉사로 생각하거나 저임금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기는 20대가 한계에요. 나이가 들수록 힘들지요. 우리 모두가 마더 테레사가 될 수는 없잖아요? 제가 창업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NPO 서른 정년설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내 인생을 걸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을 해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의미로 전 제가 차린 법인들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법인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본 사회가 좋아졌으면 하는 거죠.
기업을 22살 때 시작했어요. 설립하고 10년 정도 됐네요. 돌이켜보니 굉장히 힘든 적은 많았어요. 때로는 철야도 많이 하고요. 하지만 재미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제 아내가 출산해서 저도 2개월간 유급휴가를 받았어요. 아내도 돌보고,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보육원 부모회 회장도 하고 있지요(웃음).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니 창업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다양한 섹터와 연결해 여러 프로그램을 하면서 아마 평범하게 취업했다면 웬만해서는 만나기 어려운 저명인사들도 많이 만났지요. 세계적인 기업과 프로젝트를 하고 정부나 행정기관과도 함께 일도 했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사회는 바뀌는구나’라는 것을 느낀 거죠. 정부의 젊은이와 관계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법률을 만드는 데, 우리 조직에 어드바이스를 요청하기도 했어요. 우리가 용기 내서 창업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젊은이를 지원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이십 대가 법률에 관여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렇게 엄청난 변화를 했는데 나에게 엄청난 돈이 없다는 거지요(웃음). 근데 정말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마 제가 100억을 손에 쥐어도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뭘 하려고 한다면 100억도 부족하겠죠. 제가 원했던 사회변화가 되면 그게 제 인생의 의미가 되겠죠.
사회적 창업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실전 정보
저는 십 년 동안 많은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어요. 여러분도 창업이 두려울 때 만약 도산해도 어디선가는 나를 필요로 할 거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실 거예요(웃음). 저 또한 그런 안도감으로 10년을 버텼거든요. 22살 때 일본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10년을 반추하면 정말 사회는 바뀌는 거 같아요. 아니, 바꿀 수 있어요. 만약 자기 인생을 사회 변화에 던지겠다면 세 가지만 있으면 돼요.
첫 번째가 강한 의지에요. 특히 젊은 분들이 창업하면 친구뿐만 아니라 부모의 반대가 만만찮아요. 저도 홈페이지를 열어보면 ‘바보! 죽어라!’ 이런 댓글이 쓰여 있었어요. 흔들리지 않을 강한 의지가 필수지요.
두 번째가 용기에요. 창업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요.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용기도 필요하고,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내 도장 찍을 용기도 필요해요. 내가 하는 일이 맞을까 고민하지만 주변에서 틀렸다고 말해도 꿋꿋이 가는 용기가 필요해요. 의지랑 용기는 정말 좋은 말이에요. 1엔도 필요 없거든요.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돈이 얼마나 있는지 관계없어요. 지금 바로 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세 번째가 지속성이에요. 자기 삶의 지속하는 것, 자기 조직을 지속하는 것. 사실 이건 용기나 의지가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아요. 비즈니스적인 센스나 방법 등이 필요하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비즈니스 스킬을 익히는 게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사회문제를 많이 안고 있지요. 제가 지금 한국 등 아시아에서 강의하는 이유는 공통된 문제가 많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혹은 제가 지금 관심을 둔 사회문제가 어쩌면 다른 나라의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언젠가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가 가진 노하우가 샘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 여러분과 함께 미래를 만들고 싶어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뒤풀이 짤막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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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비즈니스 스쿨 수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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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