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빙라이브러리 안에서 변화하고 변화되다
- 2012.07.03
리빙라이브러리 안에서 변화하고 변화되다
도서관이 사뭇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정숙’을 외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의 ‘책’들은 활자가 인쇄된 책이 아니라 함께일하는재단 소셜벤처인큐베이팅 센터 1기 사업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소셜벤처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일일 ‘책’이 됐다.

“오늘 나의 실패담을 말하려고 합니다.” 〈내인생 가장 찬란한 날〉이란 도서명으로 바닥에 앉은 은새정 Onescoop 대표의 말에 그녀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사업비 천만 원을 아직 다 쓰지 못했어요. 사실 내일까지 결재를 올려야 하는데 실패를 한 거지요. 가장 큰 원인은 이 일에 완벽하게 몰입을 못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사업을 시작했지만 계속해오던 웹디자이너 일을 놓지 못했어요. 함께하는 동료도 마찬가지였지요. 동료를 만나면 소셜벤처 일보다 웹디자이너 일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지요.”
곧 자신의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은 대표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청년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걸 들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어요. 그때 생긴 에너지가 실패를 맛봤을 때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그 미션을 저 혼자만 품어서는 안 되는 거 같아요. 같이 하는 팀원들이 공감하고 같이 해야 흔들리지 않는 거죠. 동료들이 그냥 제가 하니 따라 한다고 생각하면 회사는 오래가지 못해요.”

단행본 1서가와 달리 전집 1서가는 젊은 청년 벤처 CEO 세 명이 나란히 앉아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집중적인 질문을 받았다.
“다른 기업과 차별성이 있나요?”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의 차이점이 뭐라 생각하세요?”
질문이 쏟아지는 이유는 아마 20대인 젊은 그들의 창업 담이 신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능기부를 하던 직장인, 진로 고민하던 대학생 그리고 일반기업의 젊은 사장에서 소셜벤처로 뛰어든 그들은 쏟아지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드러냈다.
“특별히 저희가 뛰어난 것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소한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사업이 전부는 아니고 다음 사업으로 가는 전철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아직은 젊으니까요.” _임재봉 NEMONE 대표
“다른 건 모르겠고요. 얼마나 지속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끈기를 가지고 지금 하는 일을 지속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_한완희 BIGWALK 대표
“취약계층 정책을 취약계층이 만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게임 좋아하고 예전에 폐인 수준으로 게임을 즐긴 적도 있는데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 그런 자신감과 차별성이 사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_박성휘 퀘스트베어 공동대표

전집 1서가가 젊은 20대들의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동안 전집 2서가는 조금은 정숙한 분위기에서 조근조근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30대 중반을 넘어 자신이 쌓아온 분야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꿈꾸는 4명의 소셜벤처가들의 이야기다.
그중 이상권 행복한 지구 대표가 소셜벤처를 이끌어간 이야기는 꽤 굴곡지다. 적정기술사회적기업콘테스트에서 천연살충제로 입상을 한 그는 말라리아 모기퇴치를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다. 하지만 막상 아프리카를 가니 그가 가진 기술은 소용이 없었다. 모기를 살충제로 잡는 문화가 우선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 말라리아 백신이 개발돼 주목을 받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가 만든 살충제는 공수표 되기 직전. 하지만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곳에서 자신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서 봤더니 학교에 컴퓨터가 없더라고요. 한국에는 버려지는 컴퓨터도 많으니 다음에 가져가자 싶어서 말라리아 조사할 때 4대를 가져갔어요. 그랬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그 후에 컴퓨터 30대를 가져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펀딩플랫폼에 올려서 다음에 또 가져갔지요. 살충제 일은 잘 안 됐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 일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향후 사업을 ‘우리나라에서 안 쓰는 물품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주자’로 바꿨지요. 지금 생각하는 아이템은 신발인데요. 그곳 학생들은 신발이 없어요. 모래벼룩이 살을 파먹는데 말이죠. 그래서 올가을에는 안 쓰는 신발이나 가방, 영어책을 보내려고 생각 중이에요. 돈 안 들이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지요.”
이 대표의 말에 누군가가 묻는다.
“그럼 수익은요? 어디서 나나요? 후원금을 모으시나요?”
“후원금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레스토랑을 한번 차려볼 생각이에요.”
그의 말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 대표는 예상을 했다는 듯 싱긋 웃으며 “케냐에 주 3회 직항이 생겼잖아요. 그곳에 1호 식당을 준비 중이에요”한다.
천연 살충제로 시작해서 컴퓨터와 신발을 보내는 일을 하며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이상권 대표의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사업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약간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이 그곳의 바오바브나무를 닮았다며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라 그 나무처럼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라는 이상권 대표의 말에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했다.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것, 그런 활동 속에 자신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소셜벤처가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소셜벤처가들의 진솔한 경험과 지혜를 공유한 리빙라이브러리는 이런 보물을 한가득 풀어내며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자신부터 변화될 것이다. 원래 책이란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니깐.

* 소셜벤처 리빙라이브러리는 지난 6월 25일 소셜벤처에 대한 경험과 지혜를 나누기 위해 열린 파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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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주간 제1회 박람회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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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대문구 사회적경제 아카데미 과정 종강